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철기 시대 (문단 편집) == 한국사 == 한반도의 철기 시대는 기원전 7세기(기원전 600년)[[https://m.hani.co.kr/arti/culture/culture_general/244529.html#cb|#]] 연해주의 철기 문화[[https://m.seoul.co.kr/news/newsView.php?id=20080327023006|#]]가 점차 도입되면서 조금씩 나타난다. 그러나 그 이후의 [[한국]] 철기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조 철기 위주였으며, [[위만조선]]과 [[부여]]가 건국되던 시점인 기원전 2세기경부터는 주조틀이 발굴되어 본격적인 자체 철기 생산을 했다고 추측된다. 이후 점차 중국의 철기 문화와는 독자적인 단조 철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, 기원전 2세기 말 [[한사군]]이 설치되던 시점에서는 한반도 전역에서 대규모의 철 생산 유적이 발견되고, 중국이나 [[일본]] 등지로 철을 수출하기도 했다. 이런 철 수출은 [[삼국시대]] 초기까지 이어졌다. 그리고 이는 일본으로 전래되어 일본에서 철기 문화를 일으키는데, 고대 일본의 철검과 한국의 철검의 동위 원소 비율이 같음이 둘 다 같은 공법으로 제조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. 청동기와 달리 철이 상대적으로 부식에 약하기 때문에, 유물이 삭아 사라져서 찾기 힘들 뿐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철기를 썼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. BC 1500년 시기의 비파형 동검과 AD 300년인 [[가야]] 시대 철검 사진을 비교해 보자. 기원전의 곡선 표현이 아직도 그대로 살아있는 비파형 동검보다 녹이 슬어서 엉망진창이 된 가야 철검 쪽이 훨씬 더 오래 된 물건처럼 보일 것이다. 물론 국사 교과서에서 나오는 것마냥 비파형 동검이 기원전 1500년이라는 근거는 현재로써는 희박하며, 다만 고조선이 하가점 상층 문화의 한 종류인 십이대영자 문화에서 출발한걸로 고고학계에서 추정하고는 있기는 하다. 다만 [[옥저]]의 영역으로 비정되는 [[함경도]]~[[연해주]] 지역의 경우, 얀콥스키 문화의 무렵 기원전 9~5세기 유적인 페스차느이 유적, 말라야포두세치카 유적에서 주조철부를 비롯한 철기가 발굴되었고, 얀콥스키 문화의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5~3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는 바라바시-3 유적에서 제철 시설이 발굴되어 [[고조선]]의 영역으로 비정되는 동만주~서북한 지역에 비해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철기 사용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. 연해주 북쪽 지역의 숙신-물길-읍루로 비정되는 아무르 지역의 경우 기원전 12~10세기 무렵 우릴 문화의 유적인 부킨스키 클루치-1유적에서 철슬래그가 발굴되어, 제철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.[* (동아시아 고대 철기문화 연구, 2012. 05. 04, 국립 문화재 연구소 고고연구실).] 연해주 지역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숙신-읍루-물길로 비정되는 [[아무르 주|아무르]] 지역의 경우, [[러시아]] 학계에서는 [[구리(원소)|구리]]의 매장이 거의 없고 소택지와 같은 풍부한 철광석이 존재한다는 환경적인 조건에 기반해서 제철 기술이 매우 빠른 시기에 널리 사용됐다고 보았다.[* (시베리아의 선사고고학, 200. 02. 05, 최몽룡 이현종 강인욱, 도서출판 주류성).] 연해주 지역의 경우도 아무르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카호를 비롯한 주변 소택지에서 사철을 채광한 것으로 여겨진다. [각주][include(틀:로그 누락 문서)] [[분류:고고학]][[분류:로그 누락 문서]][[분류:나무위키 한국사 프로젝트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